김경문 사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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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3일 밤, NC 다이노스가 김경문 감독의 퇴진을 발표했다. 그날 쓴 글은 내 감정이 많이 들어가 있어서 그대로 두고, 아래에 당시 기사로 확인한 사실만 정리해 둔다.

그날 쓴 글

빈 야구 더그아웃과 감독 모자, 라인업 카드를 표현한 라인아트

김경문 감독님이 전격 사퇴를 하셨다. 겉 보기는 사퇴지만 당연히 경질이다. 황순현 NC 대표와 갈등설이 있었고 윤송이 상무가 남편인 김택진 대표의 리얼 프야메 취미를 테클걸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올 시즌 시작 하기전 가장 싼 용병인 로건 베렛을 영입하였고 그나마도 어께 부상이 메디컬 테스트에서 발견되었는데도 강행하였다. 민병헌이 김감독님 밑에서 운동하고 싶다고 두산에서 정도만 주면 오겠다고 했는데 그것도 거절 최준석, 진야곱 을 영입하려 했는데 겨우겨우 최준석은 데려 오기는 했는데 진야곱은 못데려 왔다(진야곱은 나도 반대, 도박쟁이 out) 이렇게 시작했는데 장현식이가 아프고, 임창민이 아웃되고 원종현 김진성이.......

발표 내용

연합뉴스 기사에 따르면 NC는 3일 김 감독이 구단 고문 예우를 받고, 유영준 단장이 감독대행으로 남은 시즌을 치른다고 밝혔다. 구단은 '현장 리더십 교체'라는 표현을 쓰며 자진 사퇴도 경질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날 NC는 삼성에 7-8로 져서 20승 39패, 승률 0.339로 최하위였다. 창단 이후 최악의 성적이었다.

OSEN 기사는 김종문 단장 대행이 "팀이 위기 상황이다. 새로운 모멘텀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구단과 감독님이 다 같이 고민하고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같은 기사에서 김 감독은 언론 전화를 받지 않았고, 측근에게 "코치들은 어떻게 되는가"라고만 물었다고 한다.

김경문 감독의 NC 시절

김 감독은 2011년 8월 NC 초대 감독으로 부임했다. 1군 첫해인 2013년 7위, 2014·2015년 3위, 2016년 2위, 2017년 4위를 했고 4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나갔다. 2016년에는 창단 첫 한국시리즈에 올랐지만 준우승이었다. 두산 감독 시절(2004~2011)에도 2005, 2007, 2008년 한국시리즈에 올라 모두 준우승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감독이지만 KBO 우승은 없었다.

공교롭게 물러난 날이 역대 6번째 통산 1,700경기 출장 기록을 세운 날이었다. NC에서 740경기, 두산에서 960경기를 지휘했고, 14시즌 통산 896승 30무 774패로 900승에 4승이 모자랐다. 두산 시절인 2011년 6월 13일에도 시즌 중 물러났는데, 정확히 7년 만에 비슷한 상황이 되풀이됐다.

그 뒤

더게이트 기사에 따르면 NC는 그해 창단 첫 최하위로 시즌을 마쳤고, 2018년 10월 내부 코치였던 이동욱을 2대 감독으로 선임했다. 이동욱 감독은 2019년 5위로 포스트시즌에 복귀했고, 2020년 정규시즌 1위와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구단 첫 통합우승을 했다. 김경문 감독이 다져 놓은 팀이 2년 만에 정상에 오른 셈이다.

김경문이라는 사람

위키백과에 정리된 이력을 보면 김경문 감독은 1958년생으로, 1982년 프로야구 원년에 OB 베어스 포수로 입단해 박철순과 배터리를 이루며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함께했다. 1991년 은퇴한 뒤 미국 애틀랜타에서 2년간 지도자 연수를 받았고, 삼성과 두산 배터리코치를 거쳐 두산 감독이 됐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는 9전 전승으로 금메달을 땄다. 두산과 NC에서 무명 선수를 주전으로 키워 낸 감독으로 평가받는다.

NC를 떠난 뒤에도 야구판을 떠나지 않았다. 2019년 1월 27일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돼 2021년까지 대표팀을 맡았고, 2024년 6월 3일 한화 이글스 감독이 됐다. 2025년 7월 30일 대전 삼성전 승리로 한화 부임 후 100승을 채웠고, 그해 한화를 19년 만에 한국시리즈로 이끌었지만 LG에 1승 4패로 져 또 준우승에 머물렀다. 2026년에는 한화가 최하위로 처졌고, 시즌 후 계약이 끝나 류지현 감독에게 자리를 넘겼다.

NC 시절 기록을 조금 더 보면, 김 감독은 2011년 8월 31일 계약 기간 3년, 총 14억 원에 창단 감독으로 계약했다. 2012년 퓨처스리그에서 60승 35패 5무로 남부리그 1위를 했고, 1군 첫해인 2013년 52승 72패 4무로 7위를 했다. 2015년 8월 27일 마산 한화전 4-1 승리로 역대 7번째 감독 700승을 달성했다. 2014년 1월(3년 17억 원), 2016년 11월(3년 20억 원) 두 차례 재계약을 했으니, 2018년 퇴진은 계약 기간을 1년 넘게 남긴 시점이었다.

두산 시절에는 2006년을 빼고 2010년까지 매년 포스트시즌에 나갔고, 2007·2008년에는 한국시리즈에서 SK에 막혀 2년 연속 준우승했다. 2011년 6월 13일 팀 분위기와 성적 부진을 이유로 수석코치 김광수에게 지휘봉을 넘기고 물러났다(위키백과). NC에서도 1군 진입 2년 차인 2014년에 바로 포스트시즌에 나가 창단 팀을 빠르게 강팀으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OSEN). 두 팀 모두에서 팀의 기틀은 세웠지만 우승 직전에 멈춘 셈이다.

정리

구단 발표는 '리더십 교체'였지만 최하위 성적에 따른 퇴진이라는 게 당시 기사들의 공통된 해석이었다. 창단부터 7시즌을 함께한 감독의 마지막치고는 씁쓸했다.

참고: 연합뉴스 2018.6.3 · OSEN(네이트스포츠) 2018.6.4 · 더게이트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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